맨유의 첫 명장 어니스트 망날 감독의 부임

올드 트래포드 시대의 개막과 리그의 강자로 떠오른 맨유

여러가지 면에서 맨유의 역사는 세 남자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맷 버즈비, 알렉스 퍼거슨, 그리고 어니스트 망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이름으로 팀 이름을 개명하고 본격적인 체제개편에 나선 맨유는 1903년에 맨유 역사상 세번째로 성공적인 감독으로 평가 받는 어니스트 망날 감독을 임명한다.

맨유 부임 직후에 망날 감독은 그의 후대에 맨유를 위대한 클럽으로 만든 두 남자, 버즈비 감독과 퍼거슨 감독과 아주 똑같은 원칙을 바탕으로 팀을 이끌어 나간다.

팀의 중심은 선수도 이사진도 아닌 감독이라는 원칙 이었다.

이런 방식은 후에 살펴볼 버즈비 감독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보다 40년이 빠른 망날 감독 시대에는 더더욱 보기 드문 사례였다.

그의 공식 직함은 감독이 아닌 비서관 이었지만, 후대에 많은 축구 전문가들이 그를 두고 ‘진정한 의미에서 맨유의 첫 감독이었다.’라고 평가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망날 감독은 크게 두 가지 특징을 가진 감독 이었다. 첫 번째는 주중에 선수들에게 절대 볼을 건드릴 수 없도록 하는 훈련 철학이었다.

그는 선수들이 주중에 볼을 다루지 않아야 실전경기에서 더욱 열정적으로 경기에 임하고 그것이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믿는 감독 이었다.

볼과 관련된 훈련을 일체 배제한 채 그는 철저하게 선수들의 신체적인 능력을 향상시키는데 집중했다.

현지 전문가들은 그런 그의 방식을 ‘구시대적인 동시에 효과적이었다’ 고 대체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또 한가지 눈에 띠는 점은 그가 기자들과의 의사소통에 대단히 능수능란한 달변가 였다는 점이다.<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그레이티스트 게임스의 저자 롭 클락은 그런 그를 현재의 독설가이자 전략적으로 다루기로 유명한 주제 무리뉴 감독에 비견하기도 했다.

망날 감독은 부임 첫 시즌인 1904년 9월부터 1905년 2월까지 18경기 무패행진을 달리는등 팀을 한 단계 성장한 수준으로 이끌며 맨유를 2부리그 3위로 이끈다.

맨유에 첫 영광을 가져온 주장, 찰리 로버츠의 입단

망날 감독이 맨유에 부임한 다음 해 영입한 로버츠는 두 가지 의미에서 맨유의 역사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첫 번쨰는 뛰어난 리더십의 소유자였던 그가 맨유 최초의 리그 우승과 FA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주장이었다는 점이며 또 한가지는 1905년에 데뷔한 그가 맨유 소속 선수로는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뛴 첫 번째 선수 였다는 점이다.

물론 그 두가지를 가능하게 한 것은 그의 뛰어난 실력 이었다.

같은 시기에 맨유에서 활약한 덕위스, 벨과 함께 리그 최고의 하프백 라인을 형성했던 그는 민첩성과 강한 체력 뛰어난 패스 능력을 두루 갖춘 선수였다.

맨유에서 뛴 9년동안 총 299경기에서 23골을 기록한 그가 1913년 맨유를 떠나 애슬레틱에 입단했을 때 맨유가 받은 이적료 1,500파운드는 당시 일글랜드 리그의 최고 기록 이었다.

1934, 1938년 이탈리아의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던 비토리오 포조 감독은 20세기 초기 잉글랜드에 방문 했을때 로버츠를 보고 세계최고의 선수라는 극찬을 남기기도 했다.

뛰어난 경기력 이외에 그가 당시 화제를 몰고 다녔던 이유가 몇 가지 더 있었는데 그가 늘 양말을 무릎 위까지 올려 신고 경기를 했다는 점이었다. 이는 당시 축구협회의 규칙에 위반되는 행위였고 그는 이후에도 축구협회의 뜻에 반해서 선수들의 권리를 위한 선수노조를 창설 하는등 움직임을 주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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